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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LOVE | 아내 예찬

소방시설관리사 1차 불합격한 날

by 예은이네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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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대학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은 원하면 배우자도 바꿀 수 있고 학적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국적도 바꿀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경력은 어떻게든 바꿀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한번 지나간 시간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삶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의미다.

100여일 정도 준비했던 올해 소방시설관리사 1차 필기시험에서 과감하게(?) 불합격해버렸다. 

 

한달 동안은 집앞 독서실에서 나이 마흔짤 넘어서 학구열을 불태웠지만 불합격해버렸다. 시험시간내내 얼마나 어금니를 꽉 깨물었던지 어금니를 씌웠던 금니가 빠진 사실을 시험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평소 80점 이상은 무난히 나왔고 2차 준비도 어느정도 마쳤던 터라 1차에서 미끄러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아뿔사! 시험지를 받아보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자 시험울렁증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기대만큼 컸던 실망감으로 결국 시험은 58점으로 망쳐버렸다. 엄마한테 혼난 아이처럼 시험이 끝나고 집앞 놀이터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하필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서 어디 갈 곳도 없고,, 집에 들어갔다.

올해 남은 2차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와이프에게는 뭐라고 하지? 얼마나 남편이 바보같을까? 말은 안해도 실망스럽겠지? 그냥 때려친다고 할까 ㅡ.ㅡ

 

따끈한 국물이 있는 삼계탕이. 짠.

 

사랑스러운 와이프는 여전히 딸아이와 둘이서 뭐가 그리좋은지 깔깔깔 호호호 웃기 바쁘고 누구 방구소리가 더 큰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며 논다.

"나 왔어, 나 이번 1차는 안됐어~"라며 최대한 죄인(?)같은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가 온 것에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왔어? 어서 밥먹어~"  이 말한마디 뿐, 와이프는 내게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원래부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딸아이와 놀기에 여념이 없다. 

안다. 와이프는 정말 현명한 아내이자, 엄마라는 것을.

온 집안에 따끈따끈한 삼계탕 냄새와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리게 해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 자신은 어떤 시험을 봐도 쉽게 합격하고 열심히 해내면서도.. 남편이 하는 공부와 일에 한번도 탓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런 아내를 닮아서 "우헤헤헤~ 아빠 오늘 빵점 받았다며? 아빠 바보~ 빵점이래요~" 하며 애교로 위로해주는 딸아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나는 앞으로도 내 삶에 많은 실패가 있을 것이 훤히 보이지만, 사랑스런 아내를 선택한 나의 지난 선택과 시간과 경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아니, 누구보다 현명하고 예쁜 아내를 얻은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엄마를 닮아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나주는 딸아이까지 있으니, 이렇게 한번씩 좌절은 하더라도..이제 무던히 괜찮아진다.

요즘, 30세대가 결혼을 망설이고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말처럼, 마음이 맞지 않는 상대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배우자는 서로에게 짐이 아닌, 서로의 인생을 플러스시켜주는 힘이된다. 오늘 하루도 와이프에게 감사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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