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

올해 20회 소방시설관리사 1차 시험을 끝내고 멘붕이 와서

사흘가량 책을 덮어두었다가 독서실에 앉아 다시 문제를 훑어보았다. 대체 왜 떨어졌을까? 이렇게 쉬운 문제를 시험 당시에는 왜 못 맞혔을까.. 문제를 곱씹을수록 자기비하를 가지게 된다. 고집불통 내성격상, 이미 지난 일임에도 쿨하게 잊을 수 없다 -____-;;

문제를 다시 보면 볼수록 스스로가 밉고 지난 시간동안 대체 뭘 공부했는지 견디기 힘들다.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면 앉은 자세로 천장에 머리를 수백번 들이받고 싶다. 

이것으로 밥벌이하겠다는 녀석이 겨우 준비한게 이정도밖에 안됐어? 이것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겨우 이정도 준비해서, 기사시험 치르듯이 눈으로 암기해서 스스륵~하고 금새 풀줄 알았니? 제대로 준비 한건 맞니? 그 실력으로 올해 2차 준비해서 뭐할려고? 설령, 그렇게해서 합격을 한 들,, 넌 오로지 시험에 합격만하면 된다고 생각해? 그게 너의 밥줄, 너의 제2의 인생 밥벌이인데, 넌 처음부터 정신상태가 틀렸다구!! 쥐뿔도 없으면서 공부마저 그렇게 해?

.... 오만가지 자기비하성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당최 난 왜 하는 일마다 이모냥일까. 아흑.

 

시험에 불합격하고 자기비하를 하는 것은 견딜 수 있고 내가 짊어질 무게이지만, 무엇보다 커가는 딸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한 시간이 후회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은 시험이고, 결과는 결과다. 최소한 못난 남편은 되지말자. 에라 모르겠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딸아이를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서울랜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몇개월동안 바깥 외출을 하지 못했던 와이프와 딸아이는 입장부터 신이났다.

우리가 간 날이 평일에다가 코로나 여파때문인지, 입장시간 10시에 맞춰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빠가 시험준비다 뭐다해서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더니 그새 딸아이와 와이프는 아빠를 버리고(?) 둘이 친구가 되었고 다정히 손잡고 10시에 입장해서 퇴장할때까지 쉼없이 놀았다.

결혼 9년차. 아내를 보며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고 마음은 여린 여인이지만, 무엇보다 남편인 나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떠한 경우이든간에 아내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눈길로 지켜봐준다. 나같은 쫌생이(?) 성격의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다.

내가 운전을 잘 못할때에도

주식이니.. 가상화폐니.. 돈을 날려먹었을때에도

지금처럼 시험에 떨어지거나, 소소한 일로 내가 화를 낼 때에도...

아내는 절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도 사람이니 이유를 물어보거나, 왜 그랬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아내에게는 처음부터 상대를 미워하는 감정과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절대로 상대방을 미워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하는 실수나 일에 대해서 자기비하를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입장료 뽕을 뽑겠다며 같은 놀이기구를 무려 8번씩 타는 기염을 토한 그녀들. 나는 진짜 토할 거 같아서 벤치에 널부러져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 나와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다는 것을.. 나는 공부를 하는데 딸아이가 옆에서 방해가 되면 저리가라고 화를 낸적도 있고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쌓인 스트레스를 참지못해 괜히 와이프와 딸아이에게 짜증을 낸 적도 많았다. 그렇게 쫌생이인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그녀. 그러하기에 그녀는 언제나 쿨하며, 언제나 눈에서 하트가 뿅뿅 솟아난다. 참으로, 삶의 가치관이 높은 그녀를 느낀다. 어쩌면, 나는 올해 소방시설관리사 2차 시험과 내년 1차 시험까지 모두 포기를 할지도 모른다.

포기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와이프의 삶의 높은 가치관을 배우려고 한다. 추구하는 목적과, 대상과, 지향점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미운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가족을 포기하고, 오로지 시험 합격만이 최고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의 어떤 습성(?)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아내를 닮아서 지치지 않는 우리 딸래미는 크면.. 철인3종경기를 시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