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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LOVE | 아내 예찬

연애 2년 | 결혼 8년차, 러블리 아내를 위한 다짐일기

by 예은이네 201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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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위해 켠 컴퓨터, 문득 포털사이트를 보니..오늘도 N포세대 관련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생각해보니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나도 지금의 30대와 다르지 않고 아니, 오히려 더 절망에 빠진 40대가 아니었을까.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중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겁이 나고 지금의 30대에게 미안한 마음 마저 든다.

2009년 아내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무렵, 나는 서울에서 전세 1500만원의 집에 살고 있었다. 아무리 10년전이라지만, 서울에서 과연 전세 1500만원짜리 전세집이 있었겠냐만은, 있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할때는 월세 10만원짜리 잠만 자는 방에서 시작했고 고시원을 거쳐(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창없는 고시원은 생각보다 살 곳이 못되더라는) 월세 25만원의 옥탑방을 거쳐서 겨우 전세 1500만원짜리 집을 구했다. 굳이 서울에서 전세 1500만원의 집이란 것이 어떤 환경인지는 표현을 하지 않겠지만, 나는 거기에 더해 학자금대출 2천만원 가량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적으로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나이 서른에 50~100만원 남짓했었다. 졸업당시 이력서를 한 50장은 쓴 것 같은데 면접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방직회사, 건설회사, 안산의 모제약회사 딱 3곳을 봤다. 결과는 다 떨어졌고;; 대학시절 내내 알바를 해서 먹고 살던 습관때문에 찜질방 카운터 알바와 취업공부를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연연하고 있었는데, 결혼은 둘째치고 취업이 안되니 가진게 없었고, 가진게 없으니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내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후배들 만날 처지는 안되고 친구들 역시 살아가기 바빴고 가족들의 도움을 찾을 나이는 지났으며, 고향의 친구들 만나러 갈 여유조차 없었고 이래저래 스스로를 마인드컨트롤 하기가 힘들었다. 뭘 해도 안되고, 해봐야 소용이 없는 일 투성이었다. 

그냥 누굴 만나는 자체가 힘들고, 그냥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더라는..생각해보면, 지금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청년들이나 곧 중년에 접어든 나나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30대가 더 답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아서, 뭔가 도와준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걸까.

여하튼, 그런 내게 다가온,, 지금의 아내는 나의 재정적인 상황이나, 나의 미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를 지내고 제약회사를 다니던 아내는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장래 밝은 신랑감을 만날 수 있는 요즘말로 소위, 스펙시픽케이션이 아주 뛰어난 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다가와 주었고 연애기간을 거쳐지금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준 것은 물론이며, 그녀를 꼭 닮은 딸아이까지 낳아주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살펴주고 있다.

짧은 생, 40대 중반을 살아오면서 나는 존경스러운 사람을 몇몇 만나보지 못하였다. 나의 존경의 대상이 지금의 와이프가 될줄은 더욱이 몰랐다.

바퀴벌레와 전기장판으로 지내던 집이 재개발인지 뭔지를 하면서 우연히 13평 재개발임대아파트를 얻는 기회를 얻어서 지금까지 우리 가정은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벌어오는 돈이 얼마이든 항상 고마워하며 우리 가정을 잘 이끌어주고 있고 항상 눈에서는 하트가 뿅뿅 솓아나며, 매일같이 딸아이와 친구처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매일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아내이다.

생각해보면, 무기력하기만 하던 내가 이제 겨우 밥벌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조금이나마 안정을 틔울 수 있었던 것에는 내 의지로 무언가 이루어낸 것이 없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이제 내 스스로 의지로 무언가를 진취적으로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 크다. 그리고 그 목적과 대상은 언제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맞추며 살아야겠다. 누구나 해준다는 결혼프로포즈 마저 못해주었고...어찌보면 참, 나란 녀석... 운 좋은 녀석이다...

안풀리고 쌓일때가 많지만, 인생도 설겆이처럼 가끔은 반짝반짝 눈이부셔 오오오오 할때가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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